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티마 왕조 (문단 편집) === 멸망 === 1094년 칼리파인 [[알 무스탄시르]]가 붕어한 뒤 새로운 칼리파를 선택한 인물은 바로 알 아프달이었다. 이전에 알 무스탄시르는 자신의 맏아들로서 [[이스마일파]] 지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니자르를 후계자로 지명했다. 아직 어린 니자르의 동생 아흐마드는 지지자가 없었기 때문에, 자신의 후원자가 나타날 경우, 그에게 전적으로 매달려야 할 상황이었으며, 알 아프달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점을 염두에 두고 자기 누이동생과 아흐마드를 결혼시킨 후 알 무스탄시르가 붕어하자 아흐마드를 '알 무스탈리'(1094~1101 재위)라는 왕호를 가진 새 칼리파로 선포했다. 알 아프달의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이스마일파는 완전히 분열되었다. 페르시아, 이라크,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하던 [[하산 에 사바흐]]의 이스마일파 포교단들은 새 칼리파를 인정하지 않고, 카이로에 있는 파티마 왕조 본국과의 관계를 끊었다. 그 뒤 [[하산 에 사바흐]]는 새로운 이스마일파 세력을 일으켰는데, 시리아 지파의 이름을 따서 '아사신'이라 불렀다. 이들은 니자르와 그 후손들을 정당한 '이맘'이라고 선포하고 카이로의 칼리파들에 대해서는 찬탈자라는 비난을 퍼부었다. 파티마 왕조의 세력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으며, 심지어 이집트에서마저도 새로운 칼리파에 반대하는 세력이 나타나고 있었다. 알 무스탈리를 인정했던 예멘의 이스마일파 교도들도 1130년 알 무스탈리의 아들인 알 아미르가 아사신파에게 암살당한 뒤 그의 사촌인 알 하피즈가 칼리파의 자리에 오르자 칼리파와의 관계를 끊고 떨어져 나갔다. 예멘인들은 알 아미르가 남긴 어린 아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'이맘'이라고 주장하며 카이로의 알 하피즈와 그의 계승자들을 인정하지 않았다. 1171년 마지막 칼리파가 죽은 뒤 명목상의 와지르인 [[살라흐 앗 딘|살라딘]]이 이집트의 통치자가 되었고, 이미 권력을 상실한 파티마 왕조의 칼리파 직위는 공식적으로 철폐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